밀양손씨 중앙종친회 손권찬 부회장. 안산에서 전통 각자전 개최
천만금을 지니고 있는 것이 작은 제주를 가진 것만 못하다
손권찬 부회장의 선조의 정려각인 쌍절각(雙節閣)은 후지당파 자랑스런 유적
장인자 2025-12-22 14:44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밴드 주소복사

본문

 

 


20251222_115458.jpg

 (밀양손씨 중앙종친회 손남호회장과 손권찬부회장 전시장에서 만나다)

국가무형유산 각자장 이수자인 밀양손씨 중앙종친회 손권찬 부회장의 전통 각자(刻字)의 깊이를 보여주는 10회 전통각자전이 지난 12일 안산시평생학습관 강의동 1층 갤러리에서 개막 오는 26일까지 전시회가 계속 진행된다. 올해 전시는 2015년 전통각자 강좌가 개설된 이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져 온 교육과 창작의 결실로, 전통문화를 오늘의 감각으로 계승하려는 손권찬 부회장과 함께 참여한 작가들의 의지가 담긴 자리인데 밀양손씨 중앙종친회 손남호회장, 종사국장 손교영, 사무국장 손영동은 22일 작품전시장을 방문하여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다.

 

전시를 이끄는 소농(小農) 손권찬 작가(국가무형유산 각자장 이수자)는 밀양손씨 중앙종친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오랜 기간 안산시 평생학습관에서 전통 각자를 지도하며 많은 수강생을 배출해 왔다. 그는 무형유산은 과거에 머무르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숨 쉬는 문화여야 한다어렵고 고된 길이지만 함께 걸어온 분들의 정성과 인내가 10회 전시라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소회를 밝혔다전시에는 참여 작가들의 신작과 완성도 높은 작품 다수가 출품됐다. 특히 손권찬 부회장의 불실심(不實心)’마음이 진실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을 터놓지 않으면 일을 알지 못한다는 뜻을 담아 전통 각자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제된 필획과 깊이 있는 음각 표현은 각자가 지닌 수행성과 집중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다.

 

20251222_111959.jpg

(불실심: 마음이 진실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이 텅비지 않으면 일을 알지못한다)

 

손권찬 작가는 이번 전시의 슬로건을 느린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로 정하고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통 각자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예술이라며 오랜 시간 꾸준히 마음을 다해 작업해 온 참여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말하며,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 더믾은 분들과 교감했다했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는 것을 작가와의 만남에서 알았다손권찬 부회장은 현재 국가무형유산 각자장 이수자로 한국전통각자연구원 원장을 맡아 일을 하고 있으며, 안산시 평생학습관 전통각자(서각)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한국전통각자보존회 이사로 개인전 3회 전통각자전 10회를 개최하였으며 제37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장려상을 수상한바 있다한편 손권찬 부회장은 밀양손씨 후지당파의 종문회장을 역임하는 등 문중의 발전에도 기여한 바 크다.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소재 쌍절각(雙節閣)은 후지당파 자랑스런 유적

 

1766315163982.jpg

 

손권찬 중앙종친회 부회장과 손권철 녹산문중 회장은 형제로통례공(휘 경지)후지당파(김해 녹산문중)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녹산문중 회장은 동생인 손권철씨가 맡고 있으며 밀양손씨 중앙종친회 경남지회장을 맡고 있다, 선조중에 25경지(敬止) 우통례(右通禮)을 맡았다. 조선시대에 통례원(通禮院)의 정삼품(正三品) 벼슬. 좌우 각 한 사람씩 통례가 있었음. (통례 : 제사에 관한 국가의식 담당29흥서(興緖) 경업(景業)이고 1495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과 영광군수를 역임하였다. 30인갑(仁甲)은 호는 후지당(後知堂) 자는 원백(元伯)이다, 부산포 첨사를 지냈지만 선조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에 조선 중기의 무신, 의병장으로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 첨정에 이르렀다.

 

1766315155480.jpg

(병조판서로 추증되어 편액에 기록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 장령(掌令) 정인홍(鄭仁弘)의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중위장(中衛將)이 되어 실질적인 군 지휘 책임자로서 합천군수 전현룡(田見龍)이 적을 두고 달아나자 그를 대신하여 한때 합천가장(陜川假將)을 맡기도 하였으며 뛰어난 통솔력으로 군대를 장악하여 왜적과 대적하는데 공로를 세웠다1592(선조25) 6월 초순에 벌어진 무계전투(茂溪戰鬪) 때 정인홍군의 선봉장이 되어 적병 100여 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는데, 이때 그는 3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적진을 포위한 다음 50여 명의 정예병을 직접 이끌고 왜군의 진영인 병사(兵舍)에 뛰어들어 기습전으로 적을 대파하는데 공로를 세워 대규모전투에 승리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해 6월 말에 있었던 초계(草溪)의 마진전투(馬津戰鬪)에서도 특출한 전술을 구사, 낙동강을 항해 중이던 왜선단(倭船團)을 급습함으로써 이를 격파한 뒤, 잔류 적선을 섬멸하기 위하여 말을 채찍질하며 물 가운데로 추격하던 중 하상의 묽은 모래와 진흙 속에 그대로 빠져 애마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 뒤에 광해 원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66315159482.jpg

(효자로 지정되어 편액이 기록되었다)

 

31세 약해(若海)

초휘(初諱) 약허(若虛), 이실(而實) 은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정암(鼎岩)이 전투에서 전사를 당하자 복수할 뜻을 세우고 나머지 병력을 수습하여 용전분투(勇戰奮鬪)하여 순절하니 적들이 효자 손모의 시신이라 표시하였다. 중부(仲父) 의갑(義甲)공께서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하였다. 후손들에게 의해서 광해원년 정려를 받아 정려각이 세워졌다.

댓글목록

용인인터넷신문 | 우17027 (본사)경기 용인시 처인구 금학로 241번길 22-5
제보광고문의 010-5280-1199 | E-mail : dohyup1266@hanmail.net
인터넷신문 등록일 2006.6.15 | 등록번호 경기 아00057호 | 발행인:손남호 | 편집인:손남호 | 청소년보호책임자:손남호
Copyright© 2004~2025 용인인터넷신문 All right reserved | Designed by BLESS 031)954-8601

기사제보
----------
취재요청
----------
광고
제휴문의
----------
청소년
보호상담자
지정 및 공개